히치콕의 새

  여름이 힘들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덥다는 것? 피부가 끈적거리고, 몸 안에서는 계속 열기가 차올라서 신경이 쓰인다는 것? 그래서 다른 일을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 여름은 늘 그렇게 많은 시간을 빼앗아 간다. 생각을 멈추게 하고, 일상의 흐름을 느리게 만든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이런 저런 방법들을 생각해 내는 이유는 더위가 그만큼 일상을 방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가운 것을 먹고, 마시고, 생각한다. 차가운 것을 먹고, 마시고, 생각하며, 차가워지려 한다. 혀끝과 위속을 차갑게 식히고, 마음 깊은 곳의 온도까지 내린다. 



 공포를 찾는 건 마음을 서늘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공포는 살갗에 달라붙은 끈적끈적한 열기를 무시하게 할 만큼 놀라운 집중력을 만들어낸다. 무섭고, 낯설고, 두려운 것. 그것은 더위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공포가 가장 두려운 것은 실체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감상물일 수 있는 꽃 한 송이가, 어떤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일 수 있듯 말이다. 만일 당신이 지금 당장 끔찍한 공포를 체험하고 싶다면, 가장 두려워하는 무언가를 떠올리면 된다. 비밀이 폭로되는 것? 따돌림을 당하는 것? 빈곤에 처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 그 무엇이든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맞이했을 때, 공포는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실체를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고 마음 깊은 곳이 불안해질 것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공포가 개인의 두려움에서 발현된다는 걸 알았던 영화감독이다. 물론 그의 영화는 현대 공포/스릴러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무수한 기법적 요소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카메라가 비추는 그 형상은 인간의 공포 그 자체를 향해 있다. 그의 가장 훌륭한 작품 중의 하나로 꼽히는 <새>를 기억하자. 


  


  데프니 듀 모리에의 <새>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갑작스레 나타난 새떼의 공격을 충실히 묘사한다. 새들은 나타나는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공격하고 목숨을 위협한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사람들이 새를 두려워한다는 것이고, 새는 그것을 ‘알고 있다’는 듯 맹렬하게 부리를 들어올린다.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가. 집 안으로 숨어들어 나를 지키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 집 안에는 새만큼 무서운 무언가가 존재한다. 시어머니, 의심스런 이웃들, 믿을 수 없는 남자, 그리고 갇혀버린 ‘나’  

 <새>가 섬뜩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새’는 공포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거대한 배경일 뿐이다. 그것은 여름이다. 뜨겁고 정신을 분산시키고, 아무 것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들어 차가운 무언가를 찾게 만드는 것. 그러나 그 열기를 피해 도망간 곳에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고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는 공포가 있다. <새>의 집은 폐쇄되었다. 나가면 새떼들이 자리하고 있고, 집 안에는 무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낯선 눈동자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나’를 싫어한다! 남자친구의 어머니는 아들을 빼앗길까봐 눈치를 주고, 동네 사람들은 ‘나’가 새들을 몰고 왔다고 의심한다. 어쩌면 ‘나’(이 영화에서 그녀의 이름은 멜라니이다.)는 바로 그것을 두려워했을 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결코 얻지 못하리라는 것. 그러나 그 감정에 사로잡혀 도망가지도 못하고 작은 집에 갇혀 학대 당하듯 시간을 보내는 것을 나 그리고 그녀는 두려워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이야말로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여름의 그림자 아래 감추어 두었던 그녀의 진심일지 모른다. 


히치콕은 그 불안을 끄집어내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한 순간 깜짝 놀라거나, 시선을 감추게 하는 것으로 공포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잘 알았다. 겨우 그 정도로, 여름의 맹렬한 더위는 잊혀 질 수 없다.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몰입하고 집중하게 만드는 진짜 공포. 그것은 미쳐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멜라니는 결국 미쳐버린 것일까, 아니면 공포를 피하기 위해 또 다른 집을 찾아 숨어버린 것일까. 영화의 마지막 멜라니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결코 어느 순간에도 나의 공포를 직시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에 짓눌리거나 매순간 축축한 기분에 젖더라도 말이다. 나의 공포에 비하면 여름은 충분히 즐길만한 것이기에.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히치콕의 새  (0) 2015.07.31
이열치열 매운 맛집 BEST5  (1) 2015.07.31
완독의 즐거움 BEST5  (0) 2015.07.31
흡혈영화 Best3  (0) 2015.07.31
서늘한 추리 소설 걸작 BEST3  (0) 2015.07.31
취해버리고 싶은, 취해지지 않는  (0) 2015.06.30
트랙백0 댓글0
prev next